양방향을 가장한 일방향적 소통

현대는 물리적 여유와 정신적 여유가 반비례하는 시대라 할 수 있습니다. 물질적으로는 더할 나위없이 풍요로우나 정신적으로는 결핍되어 있는 사람들이 허다하기 때문이죠. 이들은 밖에서는 투입보다 많은 산출을 요구받고, 편히 쉬어야 할 여가 시간에는 SNS를 타고 쏟아지는 정보에 방해를 받습니다. 삶에도, 뇌의 용량에도 여유가 없으니 자신에게 쏟아지는 정보들을 '옳은 것'과 '그른 것'으로만 구분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생산적일 수 있었던 모든 논의가 빛을 잃고 맙니다. 실제로 세상을 이루는 모든 사건들은 전적으로 옳거나, 전적으로 그르지 않음에도 말입니다.

이런 시대에서 소통이 양방향적이라 믿는 것은 허황된 기대처럼 보입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것만 듣고,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며 살고 있으니까요. 지금 이 글을 쓰는 저조차 말입니다. 그리고 저는 이것이 현대 사회가 유독 흑백논리에 많이 잠식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그럼에도 타인의 언어 자체에 최대한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믿고 있고요. 이러한 태도가 사회를 바라보는 시선의 해상도를 높이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본문에는 '소통'을 주제로 쓴 글을 첨부했다고 했으나, 이것들은 실은 일방향적 소통 내지는 단일적 시각의 기묘함을 담아내려 노력한 글에 가깝습니다. 글의 분위기가 모두 제각각이기에 읽으시는 동안 지루하시지는 않을 듯합니다. 급하게 쓰느라 본문이 너무 마음에 안 들어 익명을 내걸었으나, 무슨 계기였든 이 사이트에 들어오신 분들에게도 익명으로 남는 건 소통을 주제로 삼은 글을 쓴 사람의 도리가 아닌 것 같아 이름을 내겁니다. 모쪼록 잘 즐겨주시길 바랍니다! 포스트잇을 쓰기 귀찮으시다면 사이트 내 방명록 메뉴를 이용해주셔도 무방합니다. 방명록 내용은 저에게만 보이니 욕만 제외하고(...^^) 많은 코멘트 남겨주세요. 비판적인 코멘트도 좋습니다. 오히려 비판적인 코멘트를 받게 된다는 사실 자체가 영광일 듯 합니다.

그럼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고재은
수록

-양방향을 가장한 일방향적 소통 (본문)
-어쩌면
-2078°에게
-신실한 시민들께 올리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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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인 이미지 출처 : Unsplash의 Noita Digi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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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방향을 가장한 일방향적 소통

원래는 이렇게 긴 훈수 같은 글을 의도하지는 않았으나 포스터 디자인을 먼저 해버리니 도저히 저기에 '반박시 님 말이 맞음ㅇㅇ'이라는 문장 자체를 넣을 수가 없더군요. 원래는 익명 커뮤니티 댓글 형식을 따서... 사람들이 코끼리의 부분만을 보고 이건 '전봇대/대리석/채찍 등'이라 확언하면서 "반박시 님 말이 맞음 ㅇㅇ." 식으로 토론의 여지조차 내비치지 않는, 근래의 공론장 상황을 글에서 드러내며 세태를 비판하려 했는데 대차게 망해버렸습니다. 제가 익명 뒤에 숨은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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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폴리탄 괴담 형식에 푹 빠져있던 시절에 썼던 글입니다. 화자는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정보를 전달하고 있지만, 검열을 피한 암호를 통해 실질적인 정보를 따로 수신하는 이들이 있음을 가정하고 있기에 주제에 얼추 맞다고 생각했습니다. 사실 인용한 두 문장을 쓰고 싶어서 끼워맞춘 것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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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78°에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글 중 하나입니다. 참고로 ℃를 써야 하는 것을 °로 오타냈습니다ㅠㅠ. 이 글을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원주민들의 이름에 왜 자의적인 해석을 붙여야만 하는가, 라는 문제를 제기한 글을 접한 뒤였습니다. 생각해보면 제임스는 제임스라 받아들이면서, 왜 원주민 이름은 '태백산 호랑이'식의 작명일 것이라 당연하게 인식하는걸까요? 제 이름을 한자로 옮기면 高在恩이고, 이름이 담은 뜻은 '높은 곳에 은혜가 있는 아이'지만 그 누구도 저를 '높은 곳에 은혜가 있는 아이'라고 인식하며 이름을 부르진 않을텐데......라는 생각이 2078℃를 만들어냈습니다. 사실 2078℃는 그냥 2078℃일 수 있어요. 근데 거기에 굳이 자의적으로 '열'에 따른 작명이라는 지극히 본인 기준의 맥락을 만들어내는 한 인간을 그려내고 싶었을 뿐입니다. 너무 자연스럽고 당연하게 느껴지는 것들을 조금 낯선 언어들로 풀어내면서요. 이걸 가능하게 한다는 점에서 SF는 정말 아름다운 장르라고 생각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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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실한 시민들께 올리는 말씀

철도회사가 자신들의 점검 내지는 보수 문제로 지하철 연착이 되는 것을 특정 시위 집단의 탓으로 돌렸다는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직후에 썼던 글입니다. 습토에 이 글을 제출한 이후, 생각보다 많은 분들이 해당 글 내의 '국가'에 동조하여 군벌세력을 경계해버리고 말았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신가요, 글 내의 군벌 세력이 적으로 느껴지셨을까요?